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이야기

누구를 위한 선물인가

누구를 위한 선물인가

한 달 전 서울에 잠시 있는 동안 잘 곳을 마련해준 친구의 생일이 있었다. 작년 그 친구 생일에 대충 5만 원 돈 되는 LED 캔들을 원한다길래 그 자리에서 사줬는데, 왜인지 모르게 기분 나쁜 감정을 버릴 수가 없었다. 올해도 그 친구에게 여러 고마움을 표현하지 못한 게 미안해서 내킨 겸 10만 원 안팎의 선물을 사주겠다 말했더니 그 친구는 뒷말하기 없기라 장난삼아 말하며 뭘 사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다. 줄 선물을 미리 생각해두진 않았지만 골똘히 고민하는 친구의 모습이 문득 불편했다. 하룻밤이 지나고 그 친구는 나에게 마침 외장하드가 사고 싶었다며 그것을 사주면 좋겠다고 말했다. 어제의 감정이 겹쳐 다시금 불편함을 느꼈다. 나는 오래 마음에 둘 바엔 이 자리에서 인터넷 결제를 하고 영수증을 보내주는 게 마음이 편할 거라 생각해 바로 결제를 마치고 영수증을 보내주었다. 그 친구는 영수증을 보자마자 나에게 사랑한다며 고마움을 표시해주었다. 아, 난 저 대답이 게임 NPC가 하는 준비된 대사같이 진실성 없이 들렸다.

일주일이 지나 택배는 친구 집에 도착했고, 받은지 3일이 돼서도 답장이 없던 걸 그 이튿날 알았다. 어떻게 대답할지 궁금한 기분으로 택배 받았냐고 물어보았지만 내 찝찝한 기분은 친구의 침묵에 저조함만 남았다. 다음날, ‘실망이구나’라는 말로 내 심정을 전하고 친구는 그제야 정신이 없었다며 감사의 답장도 전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답해주었다. 진부한 대답이다. 감사보다 사과가 먼저라니!
선물은 내 마음에서 시작되지 못했고, 추상적이었던 불편한 감정은 진심을 담는 선물이 상대방의 결핍된 생활을 채우는 구실로 변질된 데서 나온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. 내 마음이 상대방에게 준 선물에 온전히 스며들지 못하고 친구의 바람으로 엉성하게 칠해졌으니 저 주체 없는 선물은 얼마나 가엾을까. 상대방과 내 부조화는 저 선물을 만들었다. 난 이제 저런 형식적인 선물을 주지 않으련다.
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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